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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수직적 구조
영화는 상류 계층과 하류 계층의 차이를 두 가족 간의 생활 모습의 차이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지하에 살면서 항상 위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기택이의 가족과 풍족하게 아래를 바라보며 사는 박동익 사장의 가족이 대조적입니다. 감독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수직을 표현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이의 가족은 지상과 연결되는 작은 창문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기택이의 가족에게 반지하 집은 유일한 보금자리이자 가족들이 전부 모일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반지하라는 특성 때문에 불편한 점들이 많습니다. 지나가는 행인이 노상방뇨를 하면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고 그러질 않길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아래에 위치해 계속 살아갑니다. 기택이의 아들 기우는 학력을 위조하여 박동익 사장 집의 과외선생님으로서 출근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기우는 가파른 계단과 언덕을 쉼 없이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수직을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박사장의 집과 하늘을 낮은 위치에서 촬영하여 올려다보게 끔 연출하여 수직을 보여주었습니다. 박동익 사장의 집에서 일하게 된 기택이의 가족들은 항상 박동익 사장 가족을 윗사람으로서 대접합니다. 본인들의 생각이 있더라도 박동익 사장의 말 한마디를 거역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는 계급의 수직적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위 계층간 싸움
세상을 어렵게 살아가야만 하는 하위 계층들은 힘을 합쳐 협동해도 모자란데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경쟁하는 모습들이 영화속에 나옵니다. 박동익 사장 일가의 기존 입주 가정부 '문광'의 세력과 기택이 가족들 간의 신경전이 그렇습니다. 제목에 맞게 영화 속에서는 상위의 존재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동익 사장 일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던 문광과 운전수의 자리를 넘보는 기택이 가족 간의 모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위 계층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상위 계층으로부터 나오는 꿀물을 누가 먹을 건지에 대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꿀물을 받아먹기만 해서는 상위 계층이 절대로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같은 하위 계층을 밀어내는 장면을 보면 현실을 잘 꼬집고 있다고 보입니다. 다 같이 힘들게 살고 있어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이겨서라도 그것을 쟁취하려는 이기적 현실을 반영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모순적으로 기택이의 아들 기우는 돈을 모아 박동익 사장의 집을 사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미 불법을 저질러 과외를 하고 있고 가족 사기단으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돈을 모아 비싼 집을 사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모순적입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일부 하위 계층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비판하는 감독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계급 낙인
비가 세차게 내리자 박동익 사장의 아내인 최연교는 비가 오는 밖을 보며 비가 왔으니 내일은 맑은 하늘이 되겠다며 기대하고 좋아합니다. 상위 계층에게 비가 오는 날씨라는 것은 그동안의 오물을 없애주고 맑은 날씨를 제공해 주는 것인데 마치 오물들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청소부로서의 역할과 흡사합니다. 이와 반대로 기택이의 가족에게 비가 오는 날씨란 재앙입니다. 비가 오면 맨몸으로 쫄딱 맞아야 되고 반지하에는 지상으로부터 들이찬 물이 집안 살림을 송두리째 망가뜨립니다. 반지하는 햇빛이 잘 들지 않아 곰팡이가 잘 생깁니다. 그리고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습니다. 그런 집에 물까지 한 바탕 들이닥치고 나면 집은 더욱 곰팡이가 잘 생기고 빨래는 더욱 잘 마르지 않게 됩니다. 오랜 기간 곰팡이와 빨래 쉰 냄새에 노출이 되어 이 냄새는 기택이 가족을 나타내는 낙인이 됩니다. 냄새라는 것이 이 가족의 낙인이 돼버립니다. 박동익 사장과 그 아내 최연교는 이런 냄새에 예민합니다. 기택이의 가족이 숨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오랜 기간 몸에 배어버린 냄새만큼은 쉽게 숨길 수가 없습니다. 박동익 사장 가족과 기택이의 가족이 한 공간에 같이 있다고 한들 같은 수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냄새라는 낙인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위 계층은 아무리 노력하고 부끄러운 것들을 숨기려고 하여도 상위 계층에게 하위 계층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 없다는 한계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하위 계층이 겪는 아픔과 이런 사회의 단편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