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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량

     

    영화 <명량>으로 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영화는 정유재란 시기의 명량해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럼 먼저 '임진왜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592년 임진년 조선의 임금이 선조였을 때 일본은 '왜국'이라고 불리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을 통일하였고 여러가지 국내 불만을 잠재울 목적과 한반도는 물론이고 명나라 대륙을 차지할 야욕을 품고 조선을 침략하려고 하였습니다. 왜국의 최종목표는 명나라 정벌로 대륙을 지배하는 것이었기에 왜국은 조선의 왕에게 '명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을 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요구를 거절당한 왜국은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하는데 '임진년에 발생한 조선에 대한 왜국의 전란'이란 의미로 '임진왜란'이라고 부릅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파병했기 때문에 조선, 명나라, 왜국의 전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은 '정유재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약 7년간 임진왜란이 진행되는데 중간에 정전회담이 열립니다. 그러나 정전회담은 결렬되는데 이에 따라 1597년 8월에 왜국이 재차 조선을 침공하게 됩니다. 이를 정유재란이라고 부릅니다. 영화의 배경이된 명량해전은 정유재란 발생한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명량해전

    1597년 8월(음력)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1597년 9월(음력) 왜국의 수군이 조선을 침략합니다. 침략에 맞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군 함대를 대파한 전투를 명량해전이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 중에 한가지로 꼽히는 대단한 전투인데 조선 수군 판옥선은 13척에 불과했으나 133척이나되는 왜국의 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왜국은 해상로를 개척하여 조선을 정벌중이던 자신들의 육군에게 여러 물자를 보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왜국의 수군이 대파됨에 따라 해상로 확보라는 계획은 실현할 수 없게되고 전쟁에 큰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명량해전은 정유재란의 운명을 바꾼 전투였습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패했다면 조선은 전라도 지역의 곡창지대와 한강을 통한 한양 침략의 길을 내주게 되어 더 이상 항전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했을것입니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정신과 울둘목이라는 곳의 지형과 조류를 이용한 영리함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수적 열세에 군사들의 사기는 바닥인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죽고자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정신으로 무장한 이순신과 그 부하들은 배에 탑승하여 울둘목에 부근에서 전투를 합니다. 적군의 배들이 한 번에 들어올 수 없도록 바다길이 좁아지는 지형적인 특성과 예측 불가능하게 시시각각 변하는 조류를 보고 전투에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결국 대승을 거둘수 있도록한 요인입니다.

     

    이순신 장군 과거

    난세의 영웅이자 대한민국의 위대한 위인으로 칭송받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나이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략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젊은 시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어린 시절부터 원래 문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만 22세 무렵 무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28세에 훈련원 별시에 응시합니다. 그러나 시험도중 말에서 떨어져 합격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4년 후 무과에서 32세의 나이로 합격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훌륭한 장군이 되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적은 병력으로 백성들을 구하지 못하기도하고 아군의 모략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하고 훌륭한 공을 세웠으나 임금의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훌륭한 장군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나서야 비로소 영웅이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시기는 굶어 죽는 사람도 많고 의학의 수준이 현재보다 월등히 낮아 기대수명도 짧았던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32세의 나이라면 늦은 나이에 공직의 길로 들어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중간중간 어려움을 겪을 때 포기했다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참담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계셨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생각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고 좌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위인들도 모두 겪었던 일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이런 정신을 이어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올바른 목표를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과 그런 서로를 응원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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